2006년 미국으로 건너왔는데 처음 살게 된 곳이 LA의 코리아 타운이었어요.
그때 첫째 딸을 임신중이었는데 한국에서 보낸 이삿짐은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답니다.
낮에 빈집에 혼자 있는게 무서워서 집근처 신문 가판대에서 한국신문 한부를
사서 맥도날드에서 읽고 또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답니다.
코리아 타운에 있는 맥도날드여서 그런지 한국인 특히 연세 있으신 어르신들이 많았답니다.
한국에선 큰 테이블에서 주로 단체손님이나 어린이들 생일파티를 열곤 하던데 그곳의
큰 테이블엔 한국인 할아버님들이 주로 이용하셨지요.
어느 날, 주스 주문할려고 줄을 섰는데 제 앞에 서신 한국인 할아버님께서 커피 리필을
부탁하자 직원이 커피에 뭔가를 쓰고 있었어요.
맥도날드 커피를 맛이 좋아서 마시는 게 아니였던 저는 끝까지 마셔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리필이 되는지 안되는지 조차도 몰랐었답니다.
마침 어르신들이 단체로 앉으신 대형 테이블 옆에 테이블 하나가 비었길래 앉으면서
그 분께 여쭤봤답니다.
"저, 죄송하지만 아까 커피 리필하실 때 직원이 뭔가를 써주던데 그게 뭔가요?" 했더니
어르신께서 웃으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우리 한국 영감들이 하도 커피 리필을 많이 하니까
이곳 맥도날드에서 커피 리필은 1회만 가능하다고 ..." 리필한 컵이라고 써준다는 겁니다.
한국에서 소주잔 돌리시듯 늦게 오신 분들을 위해서 먼저 오신 분들이 다 마신 컵을
리필하라고 건내 준다는 것입니다.
그 얘기를 듣고 나서 옆집사는 한국여자 한테 얘길 했더니 이곳 한인타운 사람들은 그래서
맥도날드 노인정이라고 불러요. 그러는 겁니다.
첫째 딸 낳은 뒤 육아에 너무 지쳤었던 저는 딸아이가 잠든 뒤 남편에게 맡기고 집뒤에 있던
맥도날드를 여전히 찾게 되었는데 벌써 제 얼굴을 익힌 어르신들 애기 키우느라 고생많다면서
격려도 해주시고 말벗도 되어주셨더랍니다.
가끔 그분들을 보면서 이게 미래의 내모습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치자 내 눈빛을 읽은
어르신이 하시는 말씀이 얘기 엄마 눈에 우리가 한심해 보일수도 있을거야.
우리도 젊을 때 이민와서 이곳에서 열심히 살고 지금은 집도 있도 자식들도 다 성공시키고
나름 잘 살아.
근데 은퇴 후에 미국에서 우리가 갈 마땅한 곳이 없어서 여길 오는거야.
비록 맥도날드 한쪽 구석에서의 만남이지만 그분들에겐 말동무할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소중한 공간임에 틀림없었습니다. 문득 그때 만났었던 어르신들 안부가 궁금합니다.
건강하게 오래 사시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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